고개를 살짝 돌려 어깨 너머로 이쪽을 보는 소녀, 푸른 터번, 귓불에 걸린 커다란 진주 한 알. 어디서 처음 봤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얼굴만은 또렷한 그림이 있어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입니다. 소설이 되고 영화가 되면서 미술관 바깥에서 더 자주 마주치는 얼굴이 됐죠. 정작 이 소녀가 누구인지는 밝혀진 적이 없고, 그림을 그린 사람의 이름도 그가 죽고 200년 가까이 미술사 바깥에 있었습니다.

델프트를 떠나지 않은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는 1632년 네덜란드 델프트에서 태어나 1675년 같은 도시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마흔셋이었어요. 태어난 곳과 눈을 감은 곳 사이에 다른 도시 이름이 하나도 끼어들지 않는 이력이죠.

당시 네덜란드는 그림이 흔한 나라였습니다. 왕이나 교회가 아니라 평범한 시민들이 집 벽에 걸 그림을 사던 시절이라, 화가들은 수요에 맞춰 부지런히 그렸고 다작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암스테르담에서 쉼 없이 주문을 받아 내던 렘브란트가 그 왕성한 쪽이었고, 그의 63년은 렘브란트 입문에 따로 정리해 두었습니다. 베르메르는 정반대편에 서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으로 남아 있는 그림은 확정 귀속을 기준으로 35점 안팎이에요. 활동한 기간으로 나눠 보면 1년에 두어 점 꼴입니다.

그리는 속도가 이러니 이름이 멀리 퍼질 일도 없었죠. 생전의 그는 델프트 안에서는 알아주는 화가였지만, 도시 밖으로 한 걸음만 나가면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베르메르 한눈에
태어난 해와 곳
1632년, 네덜란드 델프트
세상을 떠난 해
1675년, 델프트. 마흔셋이었습니다
남은 작품
확정 귀속 기준 35점 안팎
즐겨 그린 것
창이 있는 실내, 그 안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는 한두 사람
대표작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우유 따르는 여인〉, 〈델프트 풍경〉

왼쪽 창의 공식

그의 그림을 여러 점 이어서 보면 이상할 만큼 되풀이되는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방이에요. 대부분이 실내 장면이고, 창은 거의 언제나 화면 왼쪽에 있습니다. 빛은 그 창으로 비스듬히 들어와 탁자와 사람을 지나고, 오른쪽으로 갈수록 조용히 잦아들죠.

베르메르의 방에서 되풀이되는 것 왼쪽 창 비스듬히 들어오는 빛 탁자 앞의 한 사람 어두워지는 안쪽 창은 대개 왼쪽, 빛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흐르다 잦아듭니다
창의 위치가 같으니 빛이 지나가는 길도 매번 비슷해집니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서로 다른 장면인데도 같은 방을 나눠 쓰는 것처럼 보여요. 반복은 게으름이 아니라, 한 가지 조건을 끝까지 밀어붙여 본 결과에 가깝습니다.

그 방에서 사람들은 대단한 일을 하지 않아요. 우유를 따르고, 편지를 읽고, 레이스를 뜨고, 저울을 들여다봅니다. 〈우유 따르는 여인〉은 제목 그대로 우유가 가느다랗게 떨어지는 순간에 멈춰 있어요. 이야기의 절정이 아니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몇 초를, 정물을 다루듯 조용히 붙잡은 화면입니다.

대단한 사건을 그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그림에는 시간이 흐르지 않습니다. 우유는 언제 봐도 떨어지는 중이에요.

빛의 묘사가 워낙 정확해서 오래된 논쟁도 하나 따라다닙니다. 그가 카메라 옵스쿠라 같은 광학 기기의 도움을 받았으리라는 가설이에요. 어두운 방의 작은 구멍으로 바깥 풍경을 벽에 비추는 장치인데, 초점이 흐려지는 방식이나 밝은 점이 동그랗게 번지는 표현이 그 장치로 본 상과 닮았다는 주장이죠. 다만 그가 실제로 이 기기를 썼다는 확증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흥미로운 가설로 소개할 수는 있어도 사실로 못 박기는 어려운 이야기예요.

빛을 주제로 삼았다는 점에서는 200년 뒤의 모네와 겹치는 데가 있지만 방향은 반대입니다. 모네가 야외로 나가 시시각각 달라지는 빛을 좇았다면, 베르메르는 방 하나에 들어앉아 창 하나에서 오는 빛을 끝까지 들여다봤어요.

이름 없는 얼굴,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요하네스 베르메르,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Meisje met de parel), 1665년경, 유화, 헤이그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 소장
요하네스 베르메르,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1665년경. 헤이그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 소장. 배경을 어둡게 비워 둔 덕분에 얼굴과 진주 말고는 눈이 머물 곳이 없습니다.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이 그림은 흔히 '북유럽의 모나리자'라고 불립니다. 어두운 배경, 화면 밖을 향한 시선,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없는 표정까지 다빈치의 그 얼굴과 겹치는 인상이 분명 있어요. 두 그림의 처지가 갈리는 대목은 그다음입니다. 모나리자에게는 모델이 누구였는지를 두고 이어져 온 오랜 추정이라도 있는데, 이 소녀에게는 그마저 없거든요.

애초에 초상화가 아니었기 때문이에요. 당시 네덜란드에서는 이런 그림을 트로니(tronie)라고 불렀습니다. 특정 인물을 남기려고 그린 초상이 아니라 얼굴의 유형과 표정, 이국적인 옷차림을 시험해 보는 습작에 가까운 그림이었죠. 모델이 누구였는지 기록이 없는 것은 사고가 아니라 애초의 설계인 셈입니다.

빈자리는 결국 이야기로 채워졌어요. 소녀를 화가 집안의 하녀로 상상한 소설이 나왔고 영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 그림이 아무 말도 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대신 말을 붙일 수 있었던 거예요.

색에서도 이 그림은 특별합니다. 소녀의 터번을 칠한 파랑은 울트라마린이에요. 라피스 라줄리라는 준보석을 갈아 만든 안료로, 금보다 비쌌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만큼 값이 나갔습니다. 베르메르는 형편이 넉넉한 사람이 아니었는데도 이 파랑을 아끼지 않았어요. 〈우유 따르는 여인〉의 앞치마에도 같은 파랑이 들어가 있습니다. 안료 하나가 화면과 살림을 동시에 좌우하던 사정은 회화 재료 이야기에서 따로 다뤘어요.

무너진 시장, 그리고 잊힌 200년

1672년, 프랑스가 네덜란드를 침공합니다. 전쟁은 그림을 사고파는 일부터 멈춰 세웠어요. 미술 시장이 무너지자 그의 살림도 함께 무너졌고, 3년 뒤 그는 큰 빚과 열한 명의 아이를 남긴 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이름이 조용히 사라졌어요. 그림들은 없어지지 않았지만, 누가 그렸는지가 그림과 함께 기억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20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죠.

이름이 돌아온 것은 1866년입니다. 프랑스 비평가 토레뷔르거가 베르메르를 다룬 에세이를 발표하면서, 미술사 바깥에 있던 화가가 단숨에 무대 위로 올라왔어요. 재발견에는 뒷이야기가 하나 붙습니다. 그가 베르메르의 작품으로 꼽은 그림은 66점이었는데, 이후의 연구가 그 목록을 하나씩 다시 들여다보며 확정 귀속을 35점 안팎으로 추려 냈거든요.

재발견이 꼽은 66점, 그 뒤로 남은 35점 안팎 오늘날 확정 귀속 35점 안팎 이후 연구에서 걸러진 몫
재발견의 첫 목록은 66점이었고, 뒤이은 연구가 그 절반 가까이를 덜어 냈습니다. 이름을 되찾아 준 사람의 목록이 이만큼 깎여 나갔는데도 그의 자리는 흔들리지 않았어요. 화가의 크기가 작품 수로 정해지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누구의 그림인지를 가려내는 일이 어떤 근거로 이뤄지는지는 이 작품, 진짜 맞나요에 정리해 두었어요. 베르메르의 목록이 줄어든 과정도 결국 같은 종류의 검증이었습니다.

작게, 천천히, 오래

베르메르는 큰 화면을 그리지 않았고, 많이 그리지도 않았습니다. 미술사에는 그보다 훨씬 크게, 훨씬 많이 그린 화가가 얼마든지 있어요. 그런데도 이 사람의 방이 오래 기억되는 이유는, 그가 화면에 무엇을 더 넣을지가 아니라 무엇을 덜어 낼지를 계속 정한 사람이기 때문일 겁니다. 벽은 비워 두고, 사건은 지우고, 남긴 것은 창 하나와 그 빛을 받는 사람 하나였죠.

그림이 조용할수록 실물 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중요해져요. 화면으로 보면 몇 초면 끝날 그림인데, 실제로는 빛이 벽을 타고 어디까지 가는지 눈으로 따라가야 보이는 것이 남거든요. 작품 한 점 앞에서 시간을 쓰는 요령은 미술관, 어떻게 봐야 하나요에서 다뤘습니다.

그러니 이 화가를 만나는 좋은 방법은 대표작을 확인하고 지나가는 쪽이 아니라, 방 하나에 잠깐 머물러 보는 쪽입니다. 창이 어디 있는지 먼저 찾고, 거기서 출발한 빛이 탁자를 지나 어느 지점에서 사그라드는지 눈으로 따라가 보세요. 35점 안팎이 200년의 침묵을 견디고 살아남은 이유는 대개 그 짧은 머무름 안에서 드러납니다.

자주 묻는 질문

베르메르는 왜 유명한가요?

실내로 들어온 빛을 다루는 솜씨 때문이에요. 대부분의 그림이 왼쪽 창에서 빛이 드는 방을 무대로 삼고, 우유를 따르거나 편지를 읽는 평범한 순간을 정물처럼 고요하게 붙잡습니다. 남긴 작품이 35점 안팎뿐이라는 희소성, 사후 200년 가까이 잊혔다가 되살아난 이력도 이름값을 함께 키웠어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모델은 누구인가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애초에 특정 인물을 남기려고 그린 초상이 아니라, 얼굴의 유형과 표정을 시험해 보는 트로니라는 형식의 그림이었거든요. 모델의 기록이 없는 편이 오히려 자연스럽습니다. 이 비어 있는 자리가 나중에 소설과 영화의 상상력을 불러들였죠.

베르메르 작품은 왜 35점뿐인가요?

1년에 두어 점 꼴로 아주 천천히 그린 화가였기 때문이에요. 다작하는 화가가 흔하던 시절의 네덜란드에서 그는 눈에 띄게 과작이었습니다. 다만 35점 안팎이라는 숫자는 확정 귀속을 기준으로 한 것이고, 어디까지를 그의 손으로 볼지는 연구에 따라 조금씩 달라져요.

베르메르는 왜 '빛의 화가'로 불리나요?

그림의 주인공이 사람이 아니라 빛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창은 거의 언제나 화면 왼쪽에 있고, 빛은 거기서 비스듬히 들어와 탁자와 인물을 지나 오른쪽으로 갈수록 잦아들죠. 이 묘사가 워낙 정확해서 카메라 옵스쿠라를 썼으리라는 가설이 오래 따라다니지만, 확증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베르메르 작품은 어디에서 볼 수 있나요?

대표작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헤이그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에 있습니다. 나머지 작품들은 유럽과 북미의 여러 미술관에 흩어져 있어서, 한자리에 모아 보기가 쉽지 않은 화가예요. 특정 작품을 목표로 삼는다면 소장처를 미리 확인하고 움직이는 편이 확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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