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서 사과 몇 알이 놓인 정물화 앞을 그냥 지나친 적이 있을 거예요. 색이 화려하지도 않고 솜씨가 유난히 정교해 보이지도 않는 그림이요. 그런데 20세기 미술의 여러 갈래가 저 사과 접시에서 갈라져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조금 어리둥절해집니다. 폴 세잔이 그런 화가예요. 이름은 낯설지 않은데 그림은 좀처럼 눈에 들어오지 않는 쪽이죠.
엑상프로방스의 은행가 아들
폴 세잔(Paul Cézanne)은 1839년 프랑스 남부 엑상프로방스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이 지역의 부유한 은행가였어요. 아들이 법을 공부해 안정된 자리를 잡기를 바랐고, 세잔도 처음에는 법학에 발을 들였습니다.
그러다 학업을 접고 그림 쪽으로 방향을 틀어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쓴 선택이었습니다. 그리고 파리로 올라갑니다.
여기까지는 그 시대 화가 지망생의 흔한 이야기처럼 들리죠. 다른 점은 그다음입니다. 그는 파리에서 인정받는 대신 파리를 떠났고, 떠난 자리에서 미술사를 바꿔 놓았거든요.
인상주의에 갔다가, 인상주의를 떠나다
파리에서 세잔은 인상주의 화가들과 어울렸습니다. 1874년의 제1회 인상파전에 그도 작품을 냈고, 1877년 전시에도 참여했어요.
결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인상파 전체가 조롱을 사던 시절인데, 그 안에서도 세잔은 유난히 혹독한 비판을 받는 축이었거든요. 이미 화단 바깥으로 밀려난 무리 안에서 한 번 더 밀려난 셈이죠. 같은 자리에서 〈인상, 해돋이〉로 사조의 이름을 얻어 가던 모네와는 사정이 많이 달랐습니다.
다만 그가 인상주의와 갈라선 이유가 혹평 때문만은 아니었어요. 애초에 그리려던 것이 달랐습니다.
인상주의는 순간을 그립니다. 아침의 빛과 한낮의 빛이 다르니 같은 대상을 몇 번이고 다시 그리죠. 세잔도 같은 대상을 수없이 다시 그렸는데, 이유는 정반대였어요. 그가 찾던 것은 빛을 따라 달라지는 표면이 아니라 그 밑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것, 그러니까 변하지 않는 구조였습니다.
결국 그는 파리를 떠나 고향 엑상프로방스로 돌아갑니다. 중앙 화단과 거리를 둔 채 수십 년, 거의 은둔에 가까운 작업이 이어졌어요.
원통, 구, 원뿔이라는 만년의 말
세잔의 이름과 함께 가장 자주 인용되는 대목이 있습니다. 자연을 원통, 구, 원뿔 같은 기본 형태로 다루라는 취지의 말이에요. 만년인 1904년, 화가 에밀 베르나르에게 보낸 편지에 담겨 전해집니다.
문장만 놓고 보면 딱딱한 기하학 수업처럼 들리죠. 그가 실제로 한 일은 조금 다릅니다. 눈앞의 나무와 사과와 산을 도형으로 바꿔 그린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이미 들어 있는 덩어리를 찾아내 화면 위에 세운 쪽이었어요. 그래서 그의 그림은 얇게 비치지 않고 묵직하게 버티는 느낌을 줍니다.
이 생각이 왜 중요했는지는 뒤에 온 화가들이 증명했습니다. 큐비즘이 바로 이 문장을 끝까지 밀고 나간 결과거든요. 세잔에서 큐비즘으로 이어진 길을 반대편에서 보고 싶다면 피카소 입문이 짝이 되고, 사조 전체의 흐름 속에서 그가 어디쯤 서 있는지는 미술 사조, 5분 만에 따라잡기에 지도로 정리돼 있어요.
사과 한 접시에 시점이 여럿
세잔은 사과를 지겨울 만큼 그렸습니다. 같은 사과, 같은 그릇, 같은 탁자를 놓고 몇 번이고 다시 그렸어요.
왜 하필 사과였을까요. 실용적인 이유가 하나 있습니다. 사과는 움직이지 않고, 표정을 짓지 않고, 자세가 흐트러지지도 않아요. 한 대상을 몇 주씩 붙들고 앉아 관찰하던 화가에게 이보다 편한 모델은 드물죠. 게다가 사과는 그 자체로 구에 가까운 형태라, 덩어리와 부피를 연구하기에도 알맞았습니다.
그런데 그의 정물화를 조금 오래 보면 이상한 점이 눈에 들어옵니다. 탁자의 앞선과 뒷선이 딱 맞지 않아요. 천 왼쪽에서 이어지던 탁자 모서리가 오른쪽에서는 살짝 다른 높이로 나타나죠. 그릇의 입은 위에서 내려다본 타원인데, 그릇의 몸통은 옆에서 본 모양이고요.
솜씨가 모자라서가 아닙니다. 한 화면 안에 보는 자리가 여러 개 들어와 있는 거예요. 사과는 사과가 가장 사과다워 보이는 각도에서, 그릇은 그릇이 가장 그릇다워 보이는 각도에서 옮겨 놓은 결과죠.
큐비즘이 이어받은 지점이 정확히 여기입니다. 다만 세잔의 화면은 아직 부서지지 않았어요. 얼핏 보면 평범한 정물화인데, 눈으로 선을 따라가 보면 앞뒤가 조금씩 어긋나 있는 정도죠. 그 어긋남을 화면 전체로 확대해 형태까지 조각내는 일은 다음 세대의 몫이었습니다.
산 하나, 그리고 쉰여섯에 온 발견
고향으로 돌아간 세잔에게는 늘 보이는 산이 하나 있었습니다. 생트빅투아르 산이에요. 그는 만년까지 이 산을 수십 점 반복해 그렸습니다. 유화로도 그리고 수채로도 그렸죠. 이 산을 담은 투명한 수채 풍경은 유화, 아크릴, 수채화, 뭐가 다른 건가요?에서 재료 이야기와 함께 잠깐 언급한 적이 있어요.
〈생트빅투아르 산〉 연작을 시기순으로 늘어놓으면 흐름이 보입니다. 앞쪽 화면은 그래도 풍경화답게 읽혀요. 뒤로 갈수록 나무와 밭과 바위가 색면 덩어리로 정리되고, 산은 커다란 삼각 덩어리로 남습니다. 눈에 보이는 풍경이 기하학적인 면의 집합으로 옮겨 가는 거예요.
대상이 흐릿해진 화면 앞에서 무엇을 봐야 할지 막막하다면 추상화 감상법이 도움이 될 겁니다. 세잔의 만년 풍경은 그 막막함이 시작되는 자리이기도 하니까요.
세상은 그를 오래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첫 개인전이 열린 것은 1895년, 화상 앙브루아즈 볼라르가 자기 화랑에 그의 작품을 걸면서였어요. 그때 세잔의 나이 쉰여섯이었습니다.
이 전시가 결정적이었어요. 파리의 젊은 화가들이 여기서 세잔을 발견했거든요. 남프랑스에서 혼자 사과와 산을 되풀이해 그리던 노인의 화면이, 다음 세대에게는 앞으로 가야 할 길처럼 보였습니다.
1906년 그는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다 폭풍우를 만났고, 그 뒤 앓다가 세상을 떠난 것으로 전해집니다. 태어난 곳인 엑상프로방스에서였어요. 예순일곱 해를 산 뒤였습니다. '현대 회화의 아버지'라는 별칭이 그를 따라다니기 시작한 것은 그 뒤의 일이고요.
세잔 그림을 처음 만나는 법
- 탁자 선을 눈으로 따라가기
- 정물화라면 탁자나 천의 모서리 선이 화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어떻게 이어지는지 따라가 보세요. 딱 맞지 않는 지점이 보이면, 그것이 화가가 자리를 옮겨 가며 본 흔적입니다.
- 무엇인지 대신 어떤 덩어리인지 보기
- 사과는 구에, 나무줄기는 원통에, 산은 원뿔에 가깝습니다. 무엇을 그렸는지를 따지는 대신 어떤 덩어리로 세웠는지를 보면 화면이 훨씬 빨리 읽혀요.
- 붓자국의 방향 살피기
- 같은 방향으로 나란히 놓인 짧은 붓자국이 자주 보입니다. 색을 칠한다기보다 면을 한 장씩 쌓아 올리는 방식이죠. 그의 화면이 묵직하게 버티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세잔은 살아서 크게 인정받지 못한 화가입니다. 인상파 안에서도 가장 심하게 조롱받는 축이었고, 첫 개인전은 쉰여섯에야 열렸어요. 그 사이의 수십 년을 그는 고향에서 사과와 산을 되풀이해 그리며 보냈습니다.
그 되풀이가 무엇을 향한 것이었는지는 세잔이 세상을 떠난 뒤에야 온전히 드러났어요. 순간의 인상을 좇던 회화를 붙들어 세워, 대상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묻는 회화로 옮겨 놓은 겁니다. 다음에 미술관에서 사과 몇 알이 놓인 조용한 정물화를 만나거든 그냥 지나치지 마세요. 탁자 선이 어디서 어긋나는지 한 번만 눈으로 따라가 보면, 20세기가 그 접시에서 어떻게 시작됐는지 조금은 손에 잡힐 거예요.
자주 묻는 질문
세잔은 왜 중요한 화가인가요?
순간의 빛을 좇던 인상주의에서 갈라져 나와, 대상이 어떤 덩어리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그리려 한 화가이기 때문입니다. 자연을 원통, 구, 원뿔 같은 기본 형태로 다루라는 그의 생각이 큐비즘을 비롯한 20세기 회화의 출발점이 됐어요.
세잔은 왜 사과를 그렇게 많이 그렸나요?
사과는 움직이지도 표정을 짓지도 않아서, 한 대상을 오래 붙들고 관찰하던 그에게 알맞은 모델이었습니다. 게다가 구에 가까운 단순한 형태라 덩어리와 부피를 연구하기에도 좋았죠. 그래서 같은 사과 정물을 수없이 다시 그렸습니다.
세잔을 왜 현대 회화의 아버지라고 부르나요?
20세기 회화의 여러 갈래가 그의 화면에서 갈라져 나왔다는 뜻으로 붙은 별칭이에요. 한 화면에 여러 시점이 섞이는 방식과 자연을 기본 형태로 정리하는 태도를, 피카소와 브라크를 비롯한 다음 세대가 그대로 이어받았거든요.
세잔과 인상주의는 무엇이 다른가요?
세잔도 1874년 제1회 인상파전에 참여했지만 그리려는 대상이 달랐습니다. 인상주의가 시시각각 달라지는 빛과 순간의 인상을 붙잡으려 했다면, 세잔은 빛이 변해도 남아 있는 구조와 부피를 찾으려 했어요. 그의 화면이 유난히 단단해 보이는 이유입니다.
세잔의 작품은 어디에서 볼 수 있나요?
유럽과 북미의 여러 미술관이 나누어 소장하고 있습니다. 사과 정물도 〈생트빅투아르 산〉 연작도 한곳에 모여 있지 않고 여러 미술관에 흩어져 있어요. 특정 작품을 보러 갈 계획이라면 방문 전에 해당 미술관 공식 사이트에서 전시 여부를 확인해 보세요.